누구나 카피라이터

책 읽는 두루미 2022. 8. 24. 00:05




사람이 있다
카피가 있다

 

#1
솔직히 첫 부분은 재미없었다. 생각을 생중계한다는 부분이 두서없이 느껴졌다. '역시, 시대를 타고나서 성공할 수 있었군.', 나이 든 아저씨의 말재주에 대한 글이려니 하며 읽어나갔다. 글 잘쓰는 법이나 광고에 대한 책을 읽어봤다면 아마 들어본 내용이 많을 것이다.

 

#2

그러나 이 책이 좀 더 특별한 이유는 '아이디어 스케치' 의 풍부한 과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이 지금까지 작업한 작업물을 아낌없이 공개한다. 카피를 고안하고 구체화하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할 수 있다. 어떻게 접근하고 아이디어를 냈으며 어떻게 살을 붙이고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 상세하게 설명한다. 의뢰내용과 프레젠테이션 기획서도 상당 부분을 공개했다.

 

#3

지인, 고객들과의 대화내용은 상황을 더 생생하게 만들어준다. 마치 저자와 함께 고객사를 만나고, 브리프를 받아들고, 작업실에 가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듯한 생생함을 준다. 문체는 '~습니다'로 끝나는 예의바른 존댓말이지만 적당히 섞인 해요체 덕분에 딱딱하지 않다. 교수님 책 답지만 딱딱하고 권위적이지 않다. 좀 똑똑한 할아버지가 옛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나가는 듯한, 왠지모를 구수한 느낌도 든다.

 

#4

작가의 개구진 면과 적당히 오래된 유머도 감초처럼 등장한다. 내용은 '의식의 흐름'기법을 따라 전개되기도 한다. 의뢰를 받았을 때부터 PT를 마칠 때까지 떠올랐던 생각을 따라 흘러가는데, 그야말로 '생각이 글이 되는 과정 생중계'다. 카피라이터답게 부제도 정말 잘 지었다. 또, 작가는 엄청나게 솔직했다. 시장을 잘 알지 못해 이미 다른 곳에서 쓰고 있는 카피를 제안했는지도 모른다, 영어는 못하니 고쳐달라, IT는 공부 못하겠다는 의견도 그대로 담았다. 솔직히, 프로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오히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는 것도 괜찮은 전략으로 보이기도 했다. 역시 사람은 성공하고 봐야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5

생각보다 저자는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사실, 나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노력보다는 시대적 배경 덕분에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자도 당지 운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프레젠테이션을 했는데 그게 95페이지였다'며 그 치열함을 스쳐지나가듯 말하는 그 무심함에 감탄했다. 그의 카피들이 깊은 생각과 노력의 결과물임을 수긍하게 되었다.

 

#6

단, 누구나 카피라이터가 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는 다소 공감하기 어려웠다. 카피란 게 써놓고 보니 조금 나은 문장일 뿐이라지만, 그 약간의 틈을 만들어내는 것이 어려우니 말이다. 나도 카피를 읽었을 땐 '이 정도는 나도 쓰겠는데?'싶지만 막상 펜을 들면 쉽게 써지지 않았다. 번뜩이는 재능은 없는 사람이 카피라이터가 되려면 연습을 정말 많이 해야할 것이다.

 

#7

작가의 정치색이 확고하게 드러난다. 예시로 정치카피도 많이 등장하는데 보수당 지지자라면 다소 불편할 수 있겠다. 작가를 옹호하려는 건 전혀 아니지만,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훌륭하고 정확한 보도는 본래 가장 주관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정말 좋아하는데, 개인이 견해를 가지는 건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당연히 그래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민으로서, 우리는 주변의 일이나 상황에 대해 고민하고 나만의 입장을 가져야 한다. 나는 저자가 보수당 지지자여도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8
그의 카피는 '사람'에서 시작하고 '사람'으로 끝난다. 내면의 깊고 따뜻한 감정이 카피 소재인 동시에 고객이다. 결국, 카피를 잘 쓰는 법은 사람에 대한 관심이라는 점을 다시 상기할 수 있었다. 카피라이터는 대리인이다. 고객의 문제를 글로 대신 해결해주는 사람이다. 메시지를 어떻게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지 대신 고민해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깊은 통찰은 필수이다. 고객이 어떤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사람들은 어떤 말을 듣고 싶어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과정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카피가 뜨거웠다. 사람에 대한 애정과 진심이 느껴졌다.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사회에 보탬이 되고자하는 진심어린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다음 날 그의 다른 저서인 '카피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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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쓸 때 필요한 말 위주로 짧게 쓰는 편인데, A4 한 장 분량 맞추느라 좀 길어졌다. 사실 출판사에 입사지원하면서 과제로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써야해서.. 내용을 좀 좋게 쓰려고 노력한 편이다. 양식도 책 스타일에 맞춰서 #을 붙였고, 다소 물을 타서 양을 늘리기도 했다. 양해해주시기를. 이래서 블로그 체험단 리뷰가 공정하기 어렵다. 그래도 책 자체는 카피라이터 지망생들이 한 번 읽어볼 만 하다. 정성껏 쓴 게 아까워서 작가에게 메신저로 상담요청을 부탁하며 pdf로 만들어 보냈는데 답은 못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