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자 선언
합리적 개인주의자, 성숙한 어른의 또 다른 말
첫 제목을 보자마자, 딱 '개인주의자'하면 떠오르는 성격의 남자가 그려졌다. 아, 남들한테 관심 없는 사람이겠구나. 그냥 뭐 집단주의 단체주의가 자기한테 얼마나 안 맞는지, 개인주의가 얼마나 타당한지 얘기하겠구나 싶었다. '태어난 것도 내 의사가 아니었으니 사라진 후에 대단한 흔적을 남기고 싶지도 않다'는 저자의 마인드에서 볼 수 있듯, 부장판사임에도 속세의 욕망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아 쿨하게 느껴진다. 어쨌거나 저자가 세속적으로 상당히 성공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다소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읽었다. 그러나 인간혐오증이 있음에도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관심을 갖고 나름의 기여를 실천하는 자기 길을 가는 그 시크함과 이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말주변으로 술술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다양한 사회의견에 대한 깊이 있는 의견을 들어볼 수 있었다. 사회문제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고 답을 하고, 나중에 개정판에서 새로운 의견을 보태어 저기도 했다. 나름대로의 답을 끊임없이 찾으려고 하는 모습이 정말 대단해보였다. 나는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다. 귀찮은 생각은 하고 싶지도 않고, 누군가 내 의견을 구체적으로 물어보면 피곤하고, 논쟁하고 싶지도 않다. 상식에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적어도 내 입장이 어느 쪽인지는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아 간신히 시사뉴스를 챙겨보는 정도다. 사실 내 의견을 물었을 때 나는 순수한 내 의견을 고민하고 대답하지 않는다. 여러 기사들과 덧글을 읽어보고 그 중 가장 동의할 수 있는 의견들만 종합해서 내 것인양 말한다. 이럴 때면 나는 스스로를 깨어있는 시민인 척 하는 게으른 앵무새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공부할 때 내가 생각했던 점을 저자도 똑같이 생각해서 놀랐다. 어느 나라든지 발전할 때는 교육의 기회가 공정하고 능력에 따라 기회가 주어지지만, 쇠퇴할 때는 계층사다리가 없어지고 신분이 세습된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를 현재 입시제도와 연결해서 생각했다. 그래서 저자는 수능 위주의 단순한 입시제도를 선호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뒤에 자기 의견의 한계점을 이어서 써 놓은 점에서 그 진지하고 복합적인 사고에 감탄했다.
또, 이 말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법조인들은 약자를 돕기 위해 대단한 희생이 필요 없다. 그저 월급받고 자기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자기 일에서 5분만 더 고민하고, 말 한마디만 더 따뜻하게 해주어도 큰 고난의 한가운데서 두려워하고 있는 이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실제로 저자는 아이를 증인으로 세웠을 때 보인 배려심, 518 무고인들의 사건을 어쩔 수 없이 기각할 때 직접 전화를 돌리는 정성을 보였다. 또, 조정담당판사로서 조정위원들을 뽑고 업무를 하는 과정 등 업무에서도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여러가지 시도를 하는 모습이 멋있었다.
우리 사회에 문제가 정말 너무 많아서 암울하게 느껴졌고, 고민을 다 놓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가 문명화 과정을 거치며 공존하는 방향으로 진보해왔다고 말한다. 해당시대 인구 대비 희생자 수의 비율로 보면 중국 당나라 안녹산의 난이 최악이었고 중세 이후부터 20세기까지 유럽 국가들의 살인율도 과거의 1/10~1/50 사이로 낮아졌다고 말한다. 근대국가가 생겨나며 국가가 폭력수단을 독점함으로서 무정부상태의 폭력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상업을 통해 상대를 죽이기보다 서로의 존재가 이익이 된다는 점을 깨달으며 공감의 범위를 넓혀왔다. 그런데 과거에 비해서 폭력이 줄었다면서 왜 사는게 더 힘들어지는 것 같지?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그 답도 해주었다. 이 착각이 인류의 폭력성을 감소시켜온 원동력이라고. 과거보다 나쁘지 않다며 분노하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았을 거라고. 아쉬운 점은, 여러 주제에 대해 화두를 던지고서 결말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함께 고민해서 해결해야 한다-로 끝난다는 점이다. 사실 이해가 간다. 저자는 판사이고, 모든 사회문제-그것도 다양한 원인이 아주 복잡하게 얽혀있는-에 대한 해답을 내릴 수는 없는 일이니까. 저자는 우리가 참고해야할 모델 사회에 대해서도 오래 고민한 것 같았다. 미국, 북유럽과 한국사회의 차이에 대해 언급하며, 이들의 정책을 한국에서 실행이 어려움을 설명한다. 그러나 우리가 낙담하는 것과 달리 미국은 미래를 이미 와 있는 현실로 생각하고 있다고. 우리도 낙관주의를 가지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하나하나 찾아가고, 이를 위해서 앞선 국가들의 장점과 경험을 찾아내가야 한다고. 또, 강한 힘에는 강한 책임이 따른다-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미국의 정부부처의 권한과 그 책임의 사례를 보여주었는데, 아 우리나라였으면 책임을 회피하기 바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도 전문가가(고위 관리직 등) 위기 상황에 과감한 결단력을 내릴 수 있도록 하려면 그만큼 큰 권한을 부여해야 하겠다. 나이도 많은 부장판사가 이렇게나 생각이 개방적이고 자유롭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러나 저자는 젊은시절부터 평범하지 않았음을 책 곳곳에서 알 수 있다. 부럽다. 똑똑하고, 놀 만큼 놀아도 보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직업 자체도 명예로울 뿐만 아니라 업무 자체로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고,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며 즐겁게 보내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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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인데 젊은 시절에 진짜 인기 많았을 듯.. 서울대 법대에 말도 엄청 잘하고 노는 거 좋아하는 재밌는 남자... 저자도 자긴 연애하고 놀러다녔다고 몇 차례나 언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와 다른 타인을 존중해야 하는가(...) 결국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인간에게 있어 타인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최고의 유용한 자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불행할까 . 나는 감히 우리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가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라고 생각한다.
가정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군대를 모델로 저직되어 있다
개인이 먼저 주체로 서야 타인과의 경계를 인식하여 이를 존중할 수 있고, 책임질 한계가 명확해지며, 집단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에게 최선인 전략을 사고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누군가 강력한 직권 발동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악인을 엄벌하는 것을 바란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일은 없을 거다.
가진 것은 이 나라 국적뿐인 이들이 이주민들을 멸시하고, 성기 하나가 마지막 자존심인 남성들이 여성들을 증오한다.
맹목적인 노력만이 가치의 척도는 아니다.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지 성찰이 먼저 필요하고, 노력이 정당하게 보상받지 못하는 구조에 대한 분노도 필요하다. 가장 위험하고도 어리석은 건 '노력해야 성공한다'를 넘어서 '성공한 이들은 다 처절하게 노력했기에 그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만큼 노력하여 성공한 이들이니까 괴팍하고 못되게 굴만하다', '강한 것은 아름답다' 등으로 끊임없이 가지를 치는 스톡홀름 증후군이다.
왜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 모든 직업이나 성취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정치인'이라는 최종 포식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들의 맥락에서 정치란 그런 시민적 의무가 아니라 개인적 출세의 다른 말일 뿐이다. 권력에 부와 명예, 쾌락이 당연히 따르는 걸 지켜봐온 현대사의 학습효과이기도 하다.
지금 20대들은 탈정치화된 세대?
빈곤 청년층은 생존 자체가 급해서 투쟁할 여력이 없다. 그럭저럭 일자리를 구한 청년들은 월급은 적고 미래에 대한 큰 꿈은 없지만, 적은 비용으로 소소한 취미생활에 만족하면서 저성장시대에 맞게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 집과 좋은 차는 사지 못해도, 맛집을 찾아다니고 여행을 다니며 즐거워한다. 그럭저럭 즐거운데, 왜 꼭 투쟁을 해야하나?
속시원한 본능의 배설은 찬양받고, 이를 경계하는 목소리는 위선과 가식으로 증오받는다. 저열한 본능을 당당히 내뱉는 위악이 위선보다 나은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위선이 싫다며 날것의 본능에 시민권을 부여하면 어떤 세상이 될까.
누구나 말하기 전에 세 문을 거쳐야 한다. 그것이 참말인가? 그것이 필요한 말인가? 그것이 친절한 말인가?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필요없는 말로 남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가고 있는지...
인간은 누구나 최소한 한 가지 재능은 가지고 있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는 재능 말이다. 가족에게, 친구에게, 연인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주는 재능,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재능, 친절을 베푸는 재능.
불편하다는 이유로 실재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없는 것처럼 취급하는 것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반대로 실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이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다.
이념 정당은 고사하고 미국의 공화당, 민주당 정도의 차이도 찾기 어렵다. (...) 보수, 진보란 보통 정부의 역할, 복지정책, 조세정책 등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 구별한다. (...) 국민 대상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대체로 다수 의견은 보다 많은 복지혜택은 원하되 세금은 더 내길 원치 않고, 어떤 문제든 정부가 나서서 강력히 해결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식이다.(...) '이념적인 미분화상태' (...) 원자력 발전소 건설, 한미FTA 등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 다층적 갈등구조의 문제를 진영논리로 단순화해서 선악구도로 몰고가기도 하고, 이념과 무관한 일상적인 문제에도 이념의 꼬리표를 붙이기도 한다.(애국가 3도 낮춰부르기) 우리 사회의 문제 중 하나를 얘기하면 그 문제를 제기하는 저의부터 의심한다.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면 보수냐... 문제 자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한국사회의 윤리관은 조폭의 의리 수준에 머물고 이는지도 모른다. (...) 사람들의 속마음은 내가 나쁜 짓을 해도, 끝까지 나를 배신하지 않는 공범을 원하는 거다. 현실의 조폭에게 의리 따위는 없다. 조직의 이익이 아니라 보스와 간부들의 이익이 있을 뿐이다. 내부고발자들은 그들이 어떤 동기를 가졌든 결과적으로 당신의 몫을 가로챈 권력자들의 치부를 폭로하여 당신에게 이득을 주는 사람이다.(...) 제보자는 진실을 밝히는 계기일 뿐이다. 고결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정치적 목적으로 문명의 작동을 정지하면 인간이란 쉽사리 동물에 가까운 원시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인도네시아 군부독재 다큐멘터리, 액트 오브 킬링)
아낌없이 칭찬하고 못한 부분은 감싸주고 격려하는 문화가 기꺼이 책임지는 어른을 만들어낸다.
냉소적으로 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 담대하게 낙관주의자가 되라고.
Anyone can be cynical. Dare to be an opti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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