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시선
너무 오랜만의 글이다. 여러 좋은 책들을 읽었지만, 그만큼 잘 적어야겠다는 부담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끝내 한 줄도 적지 못하고 해가 바뀌었다. 이제는 짧게라도 감상을 남겨보려고 한다.
사실 '사물의 시선'은 잘못 주문한 책이다. 이유미 작가의 초판 책을 꼭 사보라는 선배의 조언에, 서점에 작가 이름을 검색하고 역순으로 나오는 책을 샀다. 혹시나 싶어 초판 이름을 확인하니 다르다?! 초판은 절판이어서 구매창에 아예 없었던 거고 이 책은 두 번째 작품이었다. 하지만 책 배송은 이미 시작됐고... 바보같은 실수 덕분에 알게 된 책이다. 처음엔 '덕분에'가 아닌 '때문에'였다. 말 그대로 '사물'이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낸 책인데, 설정이 유치하고 왠지 내용도 오그라들 것 같았다. 그렇게 두 달 동안 책꽂이에서 방치되던 책은 자기계발서에 질린 주인에게 드디어, 오늘에서야 읽혔다. 그리고 함께 주문한 책들 중 가장 먼저 감상문이 쓰이는 영예(!)를 얻게 되었다.
책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일상생활속의 아주 평범하고 흔하다. 그렇기에 누구나 이 사물에 부여된 스토리가 단번에 이해가 되고 공감이 간다. 또, 아주 섬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은 작가의 뛰어난 필력에 책을 읽는 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이 책이 아주 독특하고 특별한 이유는 오랜 시간동안 함께 한 친구의 시선으로 물건 주인의 일상을 그려내는 것이다. 단순히 화자만 사물인 게 아니다. 주변의 사물들은 '친구(주인)'의 가족과 연인과의 관계를 바라보며 당사자처럼 행복함을 느끼고 아픔을 겪는다. 나도 옆자리에 있던 사물마냥 함께 웃고 마음아파했다. 그러나 거리를 두고 떨어진 사물은, 제 3자로서 조금은 더 객관적이고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본다. 사물은 모르는 사물주인의 마음, 사물 주인은 모르고 사물은 아는 외적인 사건. 그런 작고 소소한 시선의 불일치가 이 책의 이야기들을 더 사랑스럽게 만든다.
감상문을 쓰는 지금, 이 책은 나를 과연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 상상해보게 된다. 두 달 동안 쌓이는 먼지를 맞으며, 나의 손에 읽히던 다른 책들을 바라보기만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출근할 때 드디어 책꽂이에서 뽑힐 때는 어떤 기분이었을지, 흥미진진한 눈동자로 바라볼 때, 몸에 무지갯빛 색연필로 슥슥 부드럽게 줄이 그어질 때, 눈길이 오래 머물렀던 부분에 작은 갈피 스티커가 붙여질 때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사물의 시선' 덕분에 세상을 바라보는 재미있는 시선이 하나 더 생긴 것 같다.
이유미 작가, 북노마드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