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수집 생활
이유미 카피라이터의 첫 번째 책을 읽었다. 이 책을 살 때 함께 샀던 책들은 전부 다 읽었는데 이상하게 이 책만 안 읽히더라고. 책이 안 읽히면 억지로 읽지 말라고, 인연이면 나중에라도 다시 읽게 된다는 말을 실천하며 책꽂이에 두었다. 그런데 언젠가는 읽을 생각이었기에 잘 보이는 곳에 두었더니 계속 눈에 밟히는 거다. 결국 며칠 전 출퇴근길에 들고 다니며 이틀 내내 읽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인연이었는지 끝까지 잘 읽을 수 있었다.
행거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인상깊었다. 나무모양의 행거가 결국 퇴적물로 쌓여가는 경험담을 너무 생생하게 풀어내어 웃음이 나왔다. 우리 집에 행거는 없지만 의자나 옷장 한 켠에 쌓인 옷 무더기를 볼 때면 가슴이 정말 턱 막혔거든. 물론 성격상 이 끔찍한 덩어리를 오래 놔 두지는 않지만, 어쨌든 정말 공감이 갔다. 또, 이 책 덕분에 새로운 책을 알게 되었다. 아사이 료 작가의 '누구'에서 취준생에 대한 마음을 한 토막 인용해서 실었는데, 읽자마자 심장의 여린 살 가운데를 쿡 찔린 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이 여섯 줄 문장을 읽는 순간 바로 알라딘 앱을 켜서 책을 검색했다.
사실 이 책을 읽는다고 바로 글을 잘 쓰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얻어가는 게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카피 엑셀문서를 만든 거다. 광고를 보고 좋았던 문장을 장르에 맞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카테고리를 나누는게 아직 미숙하고, 보완해야할 점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완벽한 카테고리를 짜려고 하니 시작조차 못하겠더라고. 적어나가면서 차차 보완하기로 했다. 두 번째는 현대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자기계발서 경제 금융 실용서적을 좋아한다. 유명 고전소설은 삶에 인사이트를 주겠다 싶어서 가끔 읽는다. 소설은 나의 생활에 쓸데없고, 특히 현대소설 로맨스소설은 정말 시간낭비라고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소설을 통해 문장을 수집하고 싶어졌다. 동시대 사람들의 삶을 가장 잘 묘사한 게 소설이더라고. 가슴을 울리거나 따뜻하게 만들거나 '우와 이걸 이렇게 표현하는구나'하며 감탄하거나 미소짓게 만드는 그런 글을 읽는게 좋아졌다. 아직 편식이 심하지만, 조금씩 책의 취향을 넓혀보려고 한다.
그나저나 29CM는 정말 이유미 작가를 위한 완벽한 쇼핑몰이 아닐까 싶다. 문학적이고 섬세한 감성이 듬뿍 담긴 카피를 마음껏 쓸 수 있으니 말이다. 생활밀착 언어를 사랑하는 작가에게 온갖 생활용품 광고를 맡긴다니.. 이보다 더 완벽한 천직이 있을 수 있을까? 이 책을 TVCF 카피라이터가 쓰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다소 가볍고 자극적인 광고도 많은데다 유행어를 넣는 것도 많으니까. 그리고 차분한 글을 써도 광고주가 선택해주지 않으면 뭍히니까. 광고 자체도 강한 인상을 주는 게 더 잘 팔리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잔잔한 광고보다 강렬한 광고가 기억이 더 잘 나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짧게 쓰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또 엄청 길어졌다. 다음엔 두 단락만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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