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마트에서 울다

책 읽는 두루미 2023. 5. 20. 18:26
엄마에 대한 사랑, 추억, 정체성, 예술가로서의 방황,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는 과정..
다양한 주제를 너무나도 매끄럽게 하나로 엮어낸 이야기 



<한국계 미국인이 쓴 책>
<오바마 추천, 아마존 올해의 책, 29주 베스트셀러>

흔한 국뽕감성으로, 한국계로서 이렇게 히트친 글이 무엇일지 궁금해서 빌려읽었다.

기본적인 줄거리는 엄마의 암투병과 죽음을 함께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엄마와의 추억을 회상하고, 배우자를 만나고, 엄마의 친척들을 만나고, 엄마를 떠나보낸 슬픔을 한국문화를 통해 극복해가는 모습도 함께 보여준다. 주인공은 한 살 때 이민와서 한국어를 잘 못하지만, 엄마의 영향으로 (외국인인데도) 한식을 정말 좋아하고 여러 한국적인 가치관과 생활방식을 접할 수 있었다. 

이 책이 인상 깊었던 건 우리한테 너무 당연한 한국문화가 이 책을 통해서는 낯설게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한국인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외국인도 아닌 사람이 그려내서 적당히 익숙하되 외국인에게는 이렇게 보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 책에서 나박김치, 평양냉면, 동그랑땡과 고구마튀김에 대한 묘사를 보는게 신기했다. 외국인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콩글리쉬, 한국음식들과 레시피들이 새롭고 재밌었다.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인사 잘하는 아이한테 '예쁘다~' 라고 하는 말이 착하다 예의바르다 라는 동의어로 사용된다. 한국이 성형수술을 많이 하는 국가임을 언급하며 '도덕과 미학을 뒤섞어놓은 말은 아름다움을 가치있게 여기고 소비하는 문화로 일찌감치 자리잡았다.' 라는 말로 정확하고 군더더기 없이 설명했다. 또, 엄마들끼리 서로의 이름을 안 부르고 슬기엄마 이런 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이 자기 아이들에게 흡수되어버린 것이다.

 

음식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다. 엄마가 해줬던 음식과 좋아하는 음식, 그리고 함께 요리하고 또 먹으러 다녔던 음식에 대한 모든 기억은, 엄마와 저자간 유대의 모든 것인 것처럼 느껴졌다. 'H마트에서 울다'라는 제목처럼, 요리와 식재료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자세하고 길어 마치 요리책을 읽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처음에는 암투병하는 엄마를 위해,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는 스스로를 위해 장을 보고 한국음식을 요리하는 부분을 읽으며 작가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느낄 수 있어서 마음이 아팠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저자의 엄마가 그렇게 좋은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딸을 사랑했다는 건 너무나도 분명하지만 작가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고 또 자기기준에 맞춰 딸을 구속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엄마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았고 엄마를 정말 사랑했기에 그 마음이 너무 뭉클해서 더 이상 평가를 하지 않기로 했다.

 

H마트에서 울다는 엄마에 대한 회고록이면서 저자 자신의 자서전 같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멋지게 포장한 다른 자서전들과는 달리, 아주 시시콜콜한 묘사부터 아픈 가정사와 치부까지 아주 상세하게 기록해서 좀 놀랐다. 나라면 이런 내용은 적지 않았을 텐데 싶은 내용들도 아주 가감없이 적었다. 그리고 번역이 정말 훌륭했다. 번역가도 외국에서 오래 살고 있는 사람 같았다. 외국인이 기록한 한국요리, 한국문화를 제대로 된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번역하기 어려웠을 텐데 재료 하나하나까지 아주 세심하게 번역이 되어있어 놀랐다.

 

엄마에 대한 사랑, 추억, 정체성, 예술가로서의 방황,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는 과정 등 다양한 주제를 너무나도 매끄럽게 하나로 잘 엮어냈다. 정말 생생하고도 섬세하게 잘 묘사해서 읽는 내내 작가의 감정에 몰입할 수 있었다. 한 번쯤 읽어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