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고결해야한다는 강박관념, 마음의 짐을 벗겨주는 책
'너 페미하니?'라는 대답을 들으면 난 자신있게 대답한 적이 없었다. 그래도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서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어요.' 이렇게만 대답하곤 했다. 나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서 자격미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머리도 길고, 종종 화장도 한다. 남자도 좋고, 남들이 나를 예쁘게 봐줄 만한 말과 행동을 골라서 하기도 한다. 무례한 언행에 같이 바보처럼 웃고 넘어가기도 했고, 이런 주제를 물어봤을 때 자신있게 설명해주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는 것일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이 책의 서론을 읽고 마음에 큰 위안을 얻었던 이유는 저자도 '모범적인' 페미니스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핑크색을 좋아하고, 일부러 아양을 떨기도 하고, 섹스를 좋아하고, 여성혐오가사지만 음악이 마음에 드는 노래를 듣고 춤을 추기도 한다. 책을 다 읽고 그러면 이 저자의 입장은 무엇인가. 이 책의 마지막 세 문장이 정리해준다. '난 모순적인 사람이지만, 확실한 건 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개똥 같은 취급을 당하고 싶지는 않다는 점이다. 페미니스트가 아예 아닌 것보다는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는 편이 훨씬 낫다고 믿는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는 스스로를 계속 나쁜 페미니스트라고 말한다. 확실히,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페미니스트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개똥'같은 취급을 당하지 않도록 여성인권을 위해 애쓰고 영향력을 미치는 멋진 페미니스트다.
작가는 이 사회가 여성에게 어떤 식으로, 얼마나 불공평하게 대하는지 하나하나 짚어준다. 정말, 너무나 당연했고 숨쉬듯이 자연스러운 일상이어서, 예전 같았으면 이게 차별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여성이 성폭행 당한 기사에 '앞길이 창창한, 혹은 너무나 평범했던' 남성 가해자에게 안쓰러움을 느끼게 하는 기사.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여전히 공중파에 출연하며 돈을 쓸어담는 남성 연예인, 스포츠 선수들. 가뜩이나 뽑아주지도 않는 여성예술가의 작품에만 유독 엄격한 잣대를 내미는 사람들. 심지어 사람들은 가상의 세계인 소설 속에서도 남녀 인물들의 성격에 다른 잣대를 갖대단다. 쓰레기 같고 엉망진창인 남자는 찬양받고(호밀밭의 파수꾼), 여자라면 성격을 왜 이따위로 만들었냐며 혹평한다. 이 때 대답이 정말 인상깊었다. ‘책으로 친구를 사귀려고?’ 책을 읽을 때는 이 인물이 내 친구로서 어울리는 사람인지 따질 게 아니라, 생생하게 그려져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는 말을 읽으며, 평소 만화나 소설에 과몰입했던 것을 반성했다. 드라마, 영화에 보면 성폭행이나 그 비슷한 장면이 대부분 등장한다. 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지만, 이게 너무 싫었다. 빠져도 내용 전개에 지장이 없음에도 눈요깃거리, 긴장을 불어넣는 양념으로 이 끔찍한 장면을 집어넣는게 진심으로 역겹다. 한 사람의 인생이 피로 난도질당하고 어쩌면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할텐데 이렇게 가볍고 짧게 치고 빠지는 서비스신으로 등장하는게 정말 화가 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뉴스매체에서도, 드라마 영화 등 가상세계에서는 그 뒷내용은 절대로 다루지 않는다. 사람들로부터 관심만 이끌어내고 양심의 가책으로부터는 도피하는 비겁한 X들이다. 이처럼 작품 내에 등장하는 짧게 여성은 이렇게 눈요깃거리 용이다. 비중이 큰 여성은 대부분 헌신적이고 남성을 위해 희생한다. 능력있고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여도 결국 남성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받아야 문제를 해결할 정도로 약하고, 그 댓가로 남성에게 자신을 맞추고 희생하는 결말이다. 성격적으로든, 성적으로든. 남성에게 도움을 주는 조력자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저자가 흑인이기 때문에, 인종적인 이야기도 많이 등장한다. 특히, 흑인은 항상 개그 아니면 조력자로 등장하고 빠지는 역할로만 등장한다는 사실에 공감했다. 아시아인은 수학 잘하는 괴짜 왕따로만 등장하니 오히려 더 안 좋을지도. 아시아 여성으로서 인종차별에 공감하지만, 흑인이기에 아시아 여성의 차별에 주목하지는 않았다. 일부러 배제한 건 아니고 잘 몰랐고, 관심대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원래 사람은 자기 처지에 가장 민감한 법이니까. 그러나 어쨌든 유색인종이기에, 백인 페미니스트들의 말로 설명할 수 없던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인종차별 문제에 묻혀서 같은 흑인(남성)에게 성차별을 당하는건 지워져버리는 게 한국의 처지와 정말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세 번은 읽어줘야 독후감을 제대로 쓸 수 있을텐데, 게으른 나는 고작 한 번 읽고 쓴다. 한 번 읽었지만 필사하고 하고 싶은 말도 정말 많다. 이 책의 훌륭한 점을 요약하자면, 사회내 다양한 성차별이 왜 잘못되었는지 깊게 다루고 있다는 점, 페미니스트들에게 완전무결할 필요가 없다며 지친 페미니스트들의 마음을 달래준다는 점이다. 우리는 연대해야 하며, 일차 목표는 모든 분야에서의 성평등이라고. 나도 모범적인 페미니스트는 아니다. 그러나 지치지 않고, 목표를 잃지 않는 페미니스트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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