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책 읽는 두루미 2022. 9. 28. 13:27

 

우리가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이유는 말할 수 있는 언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럴수가. 어쩌면 이렇게 내 마음을 관통하는 책이 존재한다니. 
항상 찝찝하고 불쾌하고 짜증나지만 왜인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던 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제 그 이유를 말할 수 있다. 우리에겐 언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떠오르는 예시는 '성희롱'. 이전에 성희롱이 없던 게 아니라, 마땅히 표현할 단어 자체가 없었다. 오히려 남성의 적극적인 호감표시, 친근함 등 좋은 의미를 가진 말을 붙여주며, 피해자를 예민한 사람, 남자 앞길 망치는 사람 등 가해자로 만들어왔다. 지금까지 이름없던 범죄가 하나둘씩 명확한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하고 있다. 이후 이러한 범죄는 더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사실은 이전에 인정받지 못했던 각종 부조리한 일들이 이제 가시화되어 제대로 집계되는 것일 뿐이다. 이처럼 사회현상들은 모두 남성, 백인, 중산층, 이성애자의 관점에서 조명된다. 본인들이 경험하지 못 했으니 설명할 수 없는 게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당신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이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남녀차별에 대한 주제가 나오면 나는 가슴이 턱 막히는 듯 했다. 나는 언제나 친절하게 설명했고, 부드러운 말씨를 쓰고, 수많은 적절한 사례를 떠올리며 상대를 납득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나중에는 진이 빠져서 아예 이런 주제로 대화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럴 때면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페미니스트인데 제대로 아는 것도 없고, 논리적으로 설득시킬 능력도 말빨도 없구나. 더 공부할 생각은 않고 도피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는 더이상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애초에 나는 설명을 할 의무가 없다. 대답을 논리적으로 친절하게 할지 말지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대답하지 않는 선택지가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길을 물어볼 때 (물어보는 주제에)불친절하게 군다면, 나는 (알면서도) 모른다고 하고 그냥 지나갈 수 있는 것이다. 페미니즘 이슈도 똑같다. 아니, 더 폭력적이다. 강자가 약자에게 어려움을 물어보는 입장이면서, 자신이 납득할 때까지 공손하고 친절하게, 예쁜 말씨로 설명해주기를 강요한다. 잘 모르니까 내가 설명해줘야한다고? '지금 이 대화에서 누가 이해받아야하는 사람인가?'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자신은 약자가 아니니 경험해본 적이 없어 모른다고 말하면, 설명해야하는 약자는 얼마나 맥이 빠질까. 약자는 자신의 억울함을 설명하는 과정에서조차 약자이다. 경험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알게 된 괴로운 경험을 다시 꺼내는 건 힘든 일이다. 그런 힘든 경험을, 지금까지 겪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겪을 일 없을 상대에게 말하는 것 자체가 억울하고 속상한 일이다. 심지어 그 상대는 이해할 가능성도 낮고, 심지어 이해할 마음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대성공해야 겨우 본전, 아니면 시간낭비 에너지 낭비에 마음까지 피폐해지는 힘든 일인 것이다. 

부족한 점을 인정하면 훌륭한 남자가 된다.
그런데 괴로운 상태에서 인내를 갖고 설명한 내 친구는?

이해해줬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고,
이 상황에마저 열심히 친절하게 공들여 설명하는 쪽이 우리여야 한다니

 

 

그러니 저자는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라고 말한다. 책의 1/3이 넘도록, 설득을 잘 하는 법은 아예 나오지도 않는다. 대신, 애초에 대화를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고 조언해준다. 설명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호의를 '베풀어주는 것'이라고.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최소한의 예의와 상식을 갖춘 사람에게, 내 노력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만 베풀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후반부에 가서야 어떻게 '빻은' 말에 반박할지 대처 방법을 알려준다. 상황별로, 질문별로 대답할 말을 정리해줘서 아주 유용했다. 책을 한 번 밖에 안 읽어서, 바로 멋지게 대처하기가 어렵다. 다음에 읽을 때는 상황을 가정하고 소리내어 읽어보며 입에 붙이도록 노력해야겠다. 

 

알 수 없는 기분 나쁨과 찝찝함을 느꼈을 때, 그러나 반박할 말이 없었을 수많은 여성들이 이 책을 꼭 읽어보면 좋겠다.

 

 

 


 

이해를 하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남자가 성차별을 겪어보지 못해서 모르니 (차별받으면서 자라서 잘 아는) 여성이 친절하게 설명해야한다?
차별받지 않아서 몰라서 알고 싶은거면-애초에 이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떻겠냐만- 먼저 차별받은 사람을 먼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지. 강자는 팔짱 끼고 약자의 친절하고 열심인 설명을 들어준다.

여자가 더 설명 잘 하고 똑똑하다? 여성도 눈치 없이 모르고 잘 살 수 있었으면 똑똑해지지도 않았을 거다. 생존하기 위해 똑똑해진 사람한테 생존에 필요없어서 모르는 사람들까지 친절하게 설득시켜야 하는 건 화가 난다.
여자가 설명을 해서 바뀔 사람이면 스스로 노력해서 바뀔 수도 있었을텐데 왜 그동안은 노력을 안했냐 왜 그동안 이런 문제에 관심 기울이지 않았냐고 분노해도 됨-> 잘 들어준다고 '감동'하고 고마워할 필요X

이제 차별이 없다-고 말하는 사회가 차별에 무지하고 평등이 멀었다는 증거

예전처럼/원래처럼 (성별로 싸우지 말고) 잘 지내자
->예전부터 있던 차별이, 원래부터 있던 비명이 이제서야 드러난 것->이걸 억지로 막으려 하는 것

온건한 헛소리; 페미니즘 대신 양성평등, 화내지 마라, 남녀 모두 존중하자~
문제를 제기하는 쪽을 나쁜 사람으로 만듦.
분노할 필요가 없는 기득권이기 때문
ex) 청년들은 노오력을 해야 성공한다->청년들 분노(그렇게 한다고 해결되는 사회구조가 아님)
이 때 청년들에게 '분노'하지 말고 좋게 넘어가라고 하는 사람은 분노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

여자가 나를 무시해서, 나를 받아주지 않아서
->여성을 선택할 수 있는 주체로 보지 않았음

과격하게 남혐으로 맞대응한다?
그동안 성숙하고 친절한 수많은 부탁, 설득, 비판은 듣지도 않다가 이런 미러링에만 반응한 것일 뿐.

김치녀 : 여성의 행위를 억압. 이런 사람이 있긴 있잖아~ 할 수 있는 건 강자의 특권

나한테 왜 그래? 모든 남자가 그런 건 아니야 : 난 모르는채로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건데 괜찮다고 말해라
->이 문제에 진심으로 관심이 있는 남성이라면 자신이 잠재적 가해자임을 인정할 것.

<대처법>
그 정도는 네가 직접 찾아보고 와
너 차별주의자였구나?
지금 내가 상대를 (경험자로서) 가르쳐주는 것이다(상대는 차별 경험이 없어서 나에게 물어보는 입장인데 가르치려 들 때)
니가 피하고 싶은 문제를 언급하니까 찔리는 거지?
여자들 대우가 나아지니까 그게 짜증난다는 거지?
내가 왜 너를 설득해야해? 나도 설득하고 싶은 사람한테는 친절하게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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